해운대


(스포일러 다수 포함)

CG가 구리다는 흉흉한 소문 탓에 100억대 괴작이 하나 나오는 건 아닐까 긴장했었다. 디자이너를 안티로 간주케 만든 포스터와 안습의 예고편도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한데 뚜껑을 열어보니... 이 물건 의외로 괜찮다. 흥행도 잘 될 것 같다. 혹시 고도의 노이즈 마케팅이었을까. 

윤제균 감독은 한국식 코미디에 대한 감이 있는 것 같다. 웃음을 한 번 빵 터뜨리기 위해서는 미리 관객을 릴랙스시키고 인물에 감정이입시키는(귀엽다는 느낌이 들게끔 한다든지, 연민을 일으킨다든지) 과정, 소위 밑밥을 잘 깔아줘야 하는데 그는 그 작업을 참 잘하는 것 같다. 전작 <1번가의 기적>에서도 느꼈던 바다. 이런 건 아무래도 테크닉이라기보단 감성에 달린 문제다. 서로 만날 일이 없는 다양한 인물들을 다루면서도 혼란스럽거나 지루하지 않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약점은 신파를 다룰 때에 드러난다. 아주 힘있게 끌어올려진 감정이 정점에 다다를 때쯤, 눈물이 찔끔 나오려는 순간 아, 뭔가 이건 좀 너무 갔다 싶은 느낌이 뇌리를 스치면서 눈시울을 보송보송하게 말려 버리는 경향이 있다. (<1번가의 기적>에서는 복싱장 부녀상봉씬이 좀 그랬다.) 재채기가 나올려다 만 듯한 아쉬움이랄까. 

<해운대>에서 아쉬운 부분은 설경구-하지원 커플의 클라이막스인 전봇대 씬이었다. 서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사랑고백을 외치는 애절한 장면인데 아무리 봐도 설경구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것같이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감전국면도 지나갔고 사방에 잡을 게 널렸으니 말이다. 좀더 설득력있게 씬을 디자인했더라면 꽤 슬플 뻔 했다. 하지만 가장 깼던 장면은 박중훈-엄정화 커플의 옥상장면이었다. 감정 참 좋았는데, 결정적인 '아임 유어 파더' 대목에서 그만 피식 해버린 것이다. 상황에 들어맞는 대사이긴 했지만... 직전에 엄정화가 딸내미한테 박중훈이 아빠라는 귀띔을 해줬기에 뒷북치는 느낌에다가, 박중훈씨가 가진 어딘지 코믹한 이미지도 한몫 하고 해서 벌어진 사태다. 눈가에 맺히려던 눈물이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배우들의 연기는 고루 훌륭하지만, 최우수연기상은 김인권에게 주고 싶다. 최우수커플상은 이민기-강예원. (겅얘원의 캐릭터는 <1번가의 기적>에서 맡은 배역의 연장선인 것 같은데, 나는 이 캐릭터가 참 좋다) 최우수 감초상은 변기뚫는 아저씨(등장시간 대비 효율은 최고) 아역상은 설경구 아들내미(요즘 보기드문 순박계열 아역). 

워스트 연기상은 아무래도 박중훈에게 돌아가야겠다. 이런 역할은 그에게 참 안어울린다. 전문용어를 전혀 리얼하게 구사하지 못하고, 감정표현도 도식적이다. 문제의 옥상씬에서는 엄정화 뿐 아니라 아역에도 밀렸다. <무릎팍 도사>에서 보여준 그의 언변과 센스는 왜 연기에선 안 살아나는 걸까. 

태국에서 만난 어느 가이드는 쓰나미에 관한 DVD를 권하면서, 판매수익금은 쓰나미 피해자 유가족들을 위해서 쓰인다고 했다. 쓰나미 때문에 관광객들이 줄어들면서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라며, 꼭 요긴하지 않더라도 노점에서 물건 좀 사주고, 웬만하면 값도 깎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영화에서처럼 부산에 메가쓰나미가 닥친다면, 이후의 부산의 모습은 어떻게 될까. 우리는 그들을 어디까지 도와줄 것이며, 그 비극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데는 또 얼마나 걸릴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문득 가족들과 지인들의 안부가 궁금해져서 전화를 만지작거렸다. 911참사현장에서 걸려온 전화는 거의 모두 사랑한다는 말로 끝났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면 재난영화로서는 성공작이 아닐까.
 

by 파란자전거 | 2009/07/25 01:31 | 이 영화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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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딱한 유머를 던져주면서 싸구려 신파 직전단계에서 매끄럽게 빠져나간다. 점프용어로 말하자면 착지가 예쁘다. 울릴 거 다 울려가며 세련미를 잃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 점에서 &lt;해운대&gt;와 비교된다.) 타이틀을 &lt;국가대표&gt;로 뽑은 것은 여러 모로 의미심장하다. 주인공 청년들에게는 개인적 성취보다도 '국가대표'라는 단어가 스 ... more

Commented by 지나가는.. at 2009/07/25 15:47
검색했다가 들어오게 됐는데요..영화어제봤는데. 아쉬운부분이 제가 생각했던 것과 같네요! 정말 공감되게 글쓰셔서, 댓글하나 달고가요..^^: 설경구의 상황이 전혀 위험해보이지 않았잖아요..전 이 영화, 계속 웃기만하다가 이민기부분에서만 펑펑 울었어요..암튼, 제 고향과 사투리가 나와서 넘 반가운 영화였는데, 왠지 대박날것 같아 더 기분좋은 영화네요..^^
Commented by 파란자전거 at 2009/07/25 17:09
댓글 감사.
이민기도 참 잘했죠... 사실 쓰나미가 올 땐 해변에 있는 것보다 바다 한가운데 있는 편이 생존가능성이 높다던데... 산소통이나 몇 개 떨궈주고 헬기가 왕복했으면 이민기도 살 수 있었을 텐데...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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