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뒤늦게 관람 인증 간단 리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범인을 끝까지 추적해서 잡아내는 플롯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영화에서 다루고 있다. 이런 영화의 성패는 첫째, 범인을 잡고자 하는 목표에 관객들을 어떻게 공감시키느냐 하는 문제와 둘째, 영화의 장르적 완성도가 얼마나 뛰어나냐 하는 문제에 달려 있다. 시의성이나 화제성이 전자와 관련깊다면 참신성이라든가 세련미, 반전의 놀라움 같은 문제는 후자와 관련깊다고 하겠다.
한국영화의 경우 이런 범인잡기 영화의 흥행은 전자에 많이 좌우되는 것 같다. 요새 한국영화 시나리오의 품질이 괜찮아서 후자의 경우 웬만하면 기본은 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장르 매니아들만 상대해서는 흥행이 안 되게 생겨먹은 구조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뛰어난 완성도를 인정하고서라도, 만약 화성연쇄살인사건이라는 끔찍한 기억이, 유영철이라는 희대의 연쇄살인마가 대중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지 않았다면 <살인의 추억>이나 <추격자>가 그토록 대박을 치긴 어려웠을 것이다.
<거북이 달린다>는 신창원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워낙 유명한 캐릭터이긴 하지만 '저 범인 녀석을 제발 잡아족쳤으면 좋겠다'는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유영철에 비해) 아무래도 턱없이 약한 범인이다. 신창원이 잡혔을때 은근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꽤 됐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이건 꽤 심각한 약점이다.
감독과 작가들은 이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쫓는 자'의 캐릭터 쪽에 공을 들였다. 박봉의 어리숙한 시골 형사, 구멍난 팬티를 입고 양말 뒤집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빈처한테 매일 구박당하는 무능한 남편, 아이들한테 면목도 안 서는 가난한 아빠... 3개월 정직을 먹고 막막한 처지를 뒤집기 위해 마누라가 양말 뒤집어 모은 쌈짓돈을 훔쳐다가 소싸움 도박에 거는 승부수를 던져서 기어코 대박을 이뤄냈는데... 하필 그 돈을 뺏어 달아나다니... 잡히면 너 죽는다! 김윤석이 탁월한 연기로 구현해 낸 주인공 형사의 사연을 따라가다 보면 정말 그놈을 '미치도록 잡고 싶어'진다. 이 영화에서 범인을 잡는다는 것은 가족들에게 해주지 못한 것들에 대한 부채감을 해소하고 실추된 가장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거북이 달린다>는 사회적으로 화제가 된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거창한 문제의식을 던지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범인을 잡는 과정에서 관객의 뒤통수를 때린다거나 놀래키려는 욕심도 부리지 않는다. 그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고단한 가장의 분투기에 집중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달린다' 보다는 '거북이'쪽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하겠다.) 어느 결에 추적영화를 따뜻한 가족영화로 변모시킨 이 선택은 대단히 현명했다고 생각한다. 충청도의 능청맞고 태평스러운 분위기를 배경으로 한 것도 탁월했다.
김윤석이 잘 구사하는 '콧김'연기(그는 잘생긴 코에서 뿜어져 나오는 콧김을 연기에 잘 활용한다)는 중년 형사의 집념과 힘겨움을 흘륭하게 형상화했다. 정경호는 너무 매끈해서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출연작 중 최고로 멋지다는 여성팬들이 꽤 많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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