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살인


이 영화 보고 난 감상을 개콘의 변기수 톤으로 말하자면,  
"괜찮다~^^"


이 영화에 대한 평론가들의 반응은 대체로 미적지근하다. 독창성도 별로고, 훌륭한 배우들을 데려다가 무미한 연기를 시킨 연출력도 별로라는 식이다. 글쎄,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다만 나는 이 영화의 가치를 평가하기 전에 몇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그림자 살인>은 시리즈를 거느려 보겠다는 야심을 품은 영화이다. (물론 이 영화가 망하면 속편이 나올 수도 없을 테니 참 대담한 기획이긴 하다). 

이 영화의 완성도를 평가할 때는 시리즈 전체를 위한 포석을 같이 봐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듭되는 속편에도 계속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공급할 수 있는 판을 짜고, 변화 발전할 여지가 있는 캐릭터들을 만들어 주면서도 이 한 편의 완결성을 갖추는 과제는 결코 만만치 않다. 영화가 끝났을 때 나는 영화의 시대배경과 캐릭터들(특히 오달수!)을 충분히 사랑하게 되었고, 속편이 나온다면 그들을 보러 기꺼이 극장에 가고 싶어졌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사줘야 하는 성취가 아닐까.

둘째, 나는 모든 영화를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업 장르영화는 그것다와야 한다는 뜻이다. 

스필버그도 <쉰들러 리스트>를 찍을 때와 <인디애나 존스 4>를 찍을 때는 확연히 다른 마인드로 접근하지 않나. 팝콘 무비는 그에 걸맞는 기대치가 있고 평가의 기준도 그 기대치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르영화 감독의 독창성이란 작곡가의 그것보다는 변주자의 그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클리셰들을 잘 끌어다 요리하는 것은 새로운 걸 창작하는 것보다 결코 쉽지 않다.
캐릭터를 구체화하는 방식도 여타의 영화들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셜록 홈즈의 내면적 고뇌에 대해 관심 가져본 적 있는가. 때론 장르의 맛을 제대로 내기 위해서 주인공은 그저 매력적인 캐리커쳐 이상을 욕심내선 안되는 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진호 탐정의 캐리커쳐에 아쉬움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상업영화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이창동, 박찬욱, 홍상수, 김기덕이 모두 훌륭한 감독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영화판에 오직 그들과 그들의 워너비들만 있다고 상상해 보면 갑갑하기 그지없다. 희한하게 한국영화는 걸작들만 살아남는 것 같다. 그저 상식적으로 웃길 줄 아는 코미디나 옛날 디즈니 가족영화 정도의 뿌듯함을 주는 저자극성 가족영화 같은 걸 만나기가 더 어렵다 이거다. 한번 원없이 웃어보자고 극장을 찾았는데 <유감스러운 도시>나 <구세주2> 같은 물건 중에서 골라야 하는 갑갑함이란... 나는 이런 목마름이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과속스캔들>의 대박을 보며 확신했다.  

잘 만든 한국산 팝콘무비가 드문 이유는 뭘까. 영화인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상업적인 기획 마인드가 영화의 완성까지 관철되지 못하는 경향도 한몫 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자. '관객을 오줌지리게 만들 정도로 무서운 공포영화(혹은 배아프게 웃기는 코미디영화)를 만들어서 돈 좀 벌어 보자'고 의기투합하고, 그 말 믿은 전주들에게 투자받아서 감독 선임하고 영화를 만들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영화가 별로 무섭지(혹은 웃기지) 않더라. 당연히 흥행은 안됐더라. 하지만 메시지가 좋거나 예술적 완성도가 높아서 (아니면 소위 '진정성'이 있어서) 매니아들 사이에선 전설이 됐더라... 한국영화의 다양성과 질적 수준도 어찌어찌 조금 높였더라... 결과적으로 아무도 재미는 못봤지만 감독은 살아남았더라... <여고괴담2>나 <다세포소녀> 같은 게 예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런 경우를 과연 성공한 프로젝트라고 봐줘야 하나?  

얘기가 어째 한참 떠돌아다녔다. 요컨대 오락물을 오락물답게 만들겠다는 마인드와 솜씨를 겸비한 감독은, 천재 감독만큼이나 귀하고 반갑다는 얘기다. 박대민 감독에 대한 칭찬을 좀더 하자면

장르물이라는게 치정이나 살인 같은 강한 사건으로 점철된 내용을 다루게 마련이다. 간혹 연출자가 거기 지나치게 매몰되어 영화를 완전심각 모드로만 몰아간다거나, 스피드에 대한 강박 때문에 쉴 틈없이 관객을 몰아붙이는 것만을 장르적 연출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추격자>의 성공 이래 이런 강박이 간혹 보인다, 이런 아쉬움은 최근 <핸드폰>에서도 진하게 느꼈다), 박대민이라는 감독은 그 함정을 비교적 잘 피해갔다. 자기가 만들려는 영화의 상 - 흥겨운 탐정장르영화 - 을 끝까지 잊지 않는다. 비교적 큰 규모의 상업영화를 찍는 감독에게 있어서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은 필수적인 덕목이다. 

배우들을 느슨하게 풀어놓아 슬렁슬렁 연기하게 하고 찍은 장면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황정민이나 오달수 같은 에너제틱한 배우들은 감독의 통제가 느슨해지는 순간 예상을 벗어난 연기를 뿜어낸다. 감독에게는 대단히 값지면서도 위험한 순간이다. 의외로 많은 영화들이 이런 장면에서 '실밥'을 노출하면서 무너지기 때문이다. 한데 이 영화의 관객들 대부분은 이런 장면에서 꼬박꼬박 웃어준다. 감독의 '감'이 나쁘지 않다는 얘기다.
 
물론 소소한 단점들도 더러 보인다. 탐정 홍진호나 박순덕(엄지원)의 캐리커쳐가 좀더 인상적이었으면 하는 아쉬움. 극중 서커스단 아이들에 대한 감정이입을 조금 더 시켜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미스터리구조가 조금만 더 튼실했더라면 하는 아쉬움 등등.

하지만 이만하면 "괜찮다~". 이 영화 잘 돼서 돈 많이 벌고, 후속편들이 꼭 나왔으면 좋겠다.

by 파란자전거 | 2009/04/04 17:57 | 이 영화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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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운서와 해설자의 연기도 자유분방하면서도 잘 조율되어 있다. 사실 코미디의 수위와 호흡을 촬영중에 적절하게 유지한다는 게 쉽지 않다. 김 감독이 선수라는 얘긴 그래서다. &lt;그림자 살인&gt; 포스트에서도 말했듯이, 대중 오락영화를 그것답게 만드는 감독은 천재적인 예술감독 못지 않게 소중하다. 그런 면에서 수작 오락영화들이 속속 나타나는 요즘의 한국영화판 ... more

Commented by 용PD at 2009/04/07 10:36
나도 유감독의 의견에 동의하오. 걸작만 살아남는 판은 답답하지. 우리에게는 B급도 필요해.
Commented by 파란자전거 at 2009/04/07 14:07
앗, 용갈형 방가.
괜찮게 본 영화가 혹평을 받아 조금 당황했는데, 흥행이 괜찮게 되고 있다는군요. 내 감이 그리 마이너는 아닌 것 같아 내심 안심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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