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8월 18일
인동초

해방 후 지금까지 독재적 군사통치가 판을 칠때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외면했다.
'나는 야당도 아니고, 여당도 아니다. 나는 정치와 관계없다'
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을 봐왔다.
그러면서 그것이 중립적이고 공정한 태도인 양 점잔을 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악을 악이라고 비판하지 않고,
선을 선이라고 격려하지 않겠다는 자들이다.
스스로는 황희 정승의 처세훈을 실천하고 있다고
자기합리화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얼핏보면 공평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공평한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은 비판을 함으로써 입게 될 손실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기회주의적인 태도다.
이것이 결국 악을 조장하고 지금껏 선을 좌절시켜왔다.
지금까지 군사독재 체제 하에서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싸운 사람들이,
이렇듯 비판을 회피하는 기회주의적인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좌절감을 느껴왔는지 모른다.
그들은 또한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악한 자들을
가장 크게 도와준 사람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란 말이 바로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독재정권에 사형선고를받고 죽음을 기다리던 김대중의 잠언집中-
I
자공(子貢)이 물었다. 선생님,
한 생(生)이 다하도록 해야 할 게 있다면
그게 뭘까요. 선생은 머뭇거리지도 않고 바로 말했다.
그거? 용서하는 거야.
II
그분이 가셨다.
2009년 8월18일 오후 1시43분,
나는 성프란시스꼬 회관으로 걸어갔고
정동 오래된 느티나무의 더 굵어진 빗방울이
우산에 후두둑 마침표들을 찍었다.
그때 세브란스 뒤편 백양나무숲도 진저리를 쳤으리라.
한세상 우리와 함께 숨 쉬었던 공기 속에
한분의 마지막 숨결이 닿았을 때
소스라치며 빗물을 털어내는
백양나무의 그 무수한 낱말들;
그분이 가셨고, 그분이 가셨다고
어디선가 문자 메시지들이 연달아 들어오고,
광화문 광장, 꽉 막힌 차량들 사이로
잠시 짜증을 멈추고
사람들은 인왕산으로 몰려가는 먹구름을 보았다.
지하철 계단을 바쁘게 뛰어오르던 자들도,
담배 피우러 복도 난간에 나온 젊은 사원들도,
기차역 대합실의 늦은 휴가객들도, 증권거래소와
통신사 사람들도 뭔가, 순간 텅 비어버린 것 같은
시간의 정지 속에 멈춰 있었다.
그분이 가셨다.
III
당신이 잠시 붙들어놓은 시간 속에, 이젠 모자를 벗고 머리 숙이는 길손들은 없지만, 대한민국 사람들 모두가 잠깐일지언정 당신을 생각했을 거예요. 돌이켜 보니, 우선 우리가, 당신과 참 오랫동안 함께 살았다는 생각이 먼저 들고요, 여든다섯 성상의 굴곡 많은 당신의 생을 가로지르는 동안 우리가 당신의 동시대였다는 게 자랑스러워요. “나는 그때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영광의 대가로 끌려가서 고생한 사람들도 많았지만요. 저는 당신을 한마디로 말할 수 있어요. 당신은 ‘목소리’, 그래요, 목소리였던 같아요. 당신은, 우리 젊은 날, 그 모질고 깜깜했던 얼어붙은 시대를 건너오는 목소리였어요. 당신 가슴속 다이몬에서 나온 그 목소리, 하마터면 비굴해질 뻔했던 우리를 다시 세우고, 우리가 헤맬 때 꼭 어떤 곳을 가리켰던 그 목소리에는 때로는 전율과 눈물이 때로는 얼마간의 피가 섞여 있었지요. 언제였던가요. 대구 유세 때였을까요. 그 목소리는 날아오는 돌멩이를 피하지 않고 주문 걸린 시대의 맹목을 향해 준열히 꾸짖음으로써 돌멩이들을 허공에 정지시켰드랬습니다. 그 피맺힌 목소리를 우리는 잊지 못합니다. 또 당신이 통곡을 터뜨리는 몇몇 장면들도 우리는 잊지 못합니다. 순안 공항에 내렸을 때 트랩 위에 잠시 서서 동원된 환호성 대신 멀리 북녘 산하를 망연히 바라보시던 당신 모습을 정말 잊을 수 없어요. 테러, 납치, 가택연금, 목숨을 요구하는 군사법정 그리고 투옥으로 점선을 이루는 당신의 생의, 정말 파란만장이라는 말로도 모자란, 그 유명한 드라마 가운데 아마 그때가 최정점이었겠지요. 참, 당신처럼, 한세상 나와서 인생을 이렇듯 엄청난 용량으로 살아낸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요? 당신이 대단하다는 건 바로 그거라고 생각해요. 세상의 온갖 욕됨까지 다 받아들이고 그 숱한 사람들의 소망을 다 담아 ‘한껏’ 사셨다는 것. 최선을 다하여 살아냈다는 것. 생을 한 점 그을음 없이 다 태워냈다는 것. 그 가운데 우리가 가장 경이롭게 생각하는 건 이거예요. 우리가 아무리 따라 하려해도 잘 안 되는 걸 당신은 하셨는데요, 그건 용서였어요. 우리도 삶의 나이테가 굵어지면서 그 안에 꼭 한두 사람, 용서할 수 없는 자 혹은 용서하기 힘든 자들이 나타나 새벽의 어둠 저편을 노려보게 되거든요. 그러나 당신은 당신을 죽음으로까지 몰아넣었던 사람들의 두려움을 기꺼이 풀어주고, 끊임없이 당신을 모략의 언어로 주문을 거는 자들까지 마침내 당신의 주검 앞으로 불러냈습니다. 아, 그래요. 용서하였으므로 당신의 생은 위대합니다. “그렇게 해서”, 2009년 8월18일 오후 1시43분, 이 세상에서 뛰었던 당신의 맥박과 혈압을 스스로 내려놓으시고 이 땅에 함께 쉬었던 숨을 스스로 다 내쉬고 당신은 이 지상의 생을 완성하셨습니다. 지금, 당신을 영원한 잠에 들게 한 저 관 속에는 이 땅에 슬픔을 가진 모든 어머니들의 눈물을 대신 닦아낸 손수건이 당신 가슴 위에 놓여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 세상의 눈물을 가지고 가시는 당신, 아름답습니다.
IV
호모 에쎄, 에쎄 호모,
이 사람을 보라,
지나가는 자들이여 잠시 서서 보라,
여기 한 사람이 있었다.
우리가 그를 묻는 것은 망각이 아니라
어떤 약속을 심는 것이다.
V
하의도 동쪽 기슭
일제히 뒤집어지는 풀섶에서
흑염소들이 고개를 돌리고 바라보네
먹구름 밀어내는 은박(銀箔)의 바다를
- 황지우 시인의 추모시, <지나가는 사람이여, 잠시 멈추시라>
광장은 다시 부지런히, 능란하게 봉쇄되었다.
지금은 겨울이다.
# by | 2009/08/18 16:56 | 살다보니 | 트랙백 | 덧글(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