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초


해방 후 지금까지 독재적 군사통치가 판을 칠때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외면했다.

'나는 야당도 아니고, 여당도 아니다. 나는 정치와 관계없다'

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을 봐왔다.
그러면서 그것이 중립적이고 공정한 태도인 양 점잔을 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악을 악이라고 비판하지 않고,
선을 선이라고 격려하지 않겠다는 자들이다.
스스로는 황희 정승의 처세훈을 실천하고 있다고
자기합리화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얼핏보면 공평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공평한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은 비판을 함으로써 입게 될 손실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기회주의적인 태도다.

이것이 결국 악을 조장하고 지금껏 선을 좌절시켜왔다.

지금까지 군사독재 체제 하에서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싸운 사람들이,
이렇듯 비판을 회피하는 기회주의적인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좌절감을 느껴왔는지 모른다.

그들은 또한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악한 자들을
가장 크게 도와준 사람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란 말이 바로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독재정권에 사형선고를받고 죽음을 기다리던 김대중의 잠언집中-


I

자공(子貢)이 물었다. 선생님,

한 생(生)이 다하도록 해야 할 게 있다면

그게 뭘까요. 선생은 머뭇거리지도 않고 바로 말했다.

그거? 용서하는 거야.



II

그분이 가셨다.

2009년 8월18일 오후 1시43분,

나는 성프란시스꼬 회관으로 걸어갔고

정동 오래된 느티나무의 더 굵어진 빗방울이

우산에 후두둑 마침표들을 찍었다.

그때 세브란스 뒤편 백양나무숲도 진저리를 쳤으리라.

한세상 우리와 함께 숨 쉬었던 공기 속에

한분의 마지막 숨결이 닿았을 때

소스라치며 빗물을 털어내는

백양나무의 그 무수한 낱말들;

그분이 가셨고, 그분이 가셨다고

어디선가 문자 메시지들이 연달아 들어오고,

광화문 광장, 꽉 막힌 차량들 사이로

잠시 짜증을 멈추고

사람들은 인왕산으로 몰려가는 먹구름을 보았다.

지하철 계단을 바쁘게 뛰어오르던 자들도,

담배 피우러 복도 난간에 나온 젊은 사원들도,

기차역 대합실의 늦은 휴가객들도, 증권거래소와

통신사 사람들도 뭔가, 순간 텅 비어버린 것 같은

시간의 정지 속에 멈춰 있었다.

그분이 가셨다.



III

당신이 잠시 붙들어놓은 시간 속에, 이젠 모자를 벗고 머리 숙이는 길손들은 없지만, 대한민국 사람들 모두가 잠깐일지언정 당신을 생각했을 거예요. 돌이켜 보니, 우선 우리가, 당신과 참 오랫동안 함께 살았다는 생각이 먼저 들고요, 여든다섯 성상의 굴곡 많은 당신의 생을 가로지르는 동안 우리가 당신의 동시대였다는 게 자랑스러워요. “나는 그때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영광의 대가로 끌려가서 고생한 사람들도 많았지만요. 저는 당신을 한마디로 말할 수 있어요. 당신은 ‘목소리’, 그래요, 목소리였던 같아요. 당신은, 우리 젊은 날, 그 모질고 깜깜했던 얼어붙은 시대를 건너오는 목소리였어요. 당신 가슴속 다이몬에서 나온 그 목소리, 하마터면 비굴해질 뻔했던 우리를 다시 세우고, 우리가 헤맬 때 꼭 어떤 곳을 가리켰던 그 목소리에는 때로는 전율과 눈물이 때로는 얼마간의 피가 섞여 있었지요. 언제였던가요. 대구 유세 때였을까요. 그 목소리는 날아오는 돌멩이를 피하지 않고 주문 걸린 시대의 맹목을 향해 준열히 꾸짖음으로써 돌멩이들을 허공에 정지시켰드랬습니다. 그 피맺힌 목소리를 우리는 잊지 못합니다. 또 당신이 통곡을 터뜨리는 몇몇 장면들도 우리는 잊지 못합니다. 순안 공항에 내렸을 때 트랩 위에 잠시 서서 동원된 환호성 대신 멀리 북녘 산하를 망연히 바라보시던 당신 모습을 정말 잊을 수 없어요. 테러, 납치, 가택연금, 목숨을 요구하는 군사법정 그리고 투옥으로 점선을 이루는 당신의 생의, 정말 파란만장이라는 말로도 모자란, 그 유명한 드라마 가운데 아마 그때가 최정점이었겠지요. 참, 당신처럼, 한세상 나와서 인생을 이렇듯 엄청난 용량으로 살아낸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요? 당신이 대단하다는 건 바로 그거라고 생각해요. 세상의 온갖 욕됨까지 다 받아들이고 그 숱한 사람들의 소망을 다 담아 ‘한껏’ 사셨다는 것. 최선을 다하여 살아냈다는 것. 생을 한 점 그을음 없이 다 태워냈다는 것. 그 가운데 우리가 가장 경이롭게 생각하는 건 이거예요. 우리가 아무리 따라 하려해도 잘 안 되는 걸 당신은 하셨는데요, 그건 용서였어요. 우리도 삶의 나이테가 굵어지면서 그 안에 꼭 한두 사람, 용서할 수 없는 자 혹은 용서하기 힘든 자들이 나타나 새벽의 어둠 저편을 노려보게 되거든요. 그러나 당신은 당신을 죽음으로까지 몰아넣었던 사람들의 두려움을 기꺼이 풀어주고, 끊임없이 당신을 모략의 언어로 주문을 거는 자들까지 마침내 당신의 주검 앞으로 불러냈습니다. 아, 그래요. 용서하였으므로 당신의 생은 위대합니다. “그렇게 해서”, 2009년 8월18일 오후 1시43분, 이 세상에서 뛰었던 당신의 맥박과 혈압을 스스로 내려놓으시고 이 땅에 함께 쉬었던 숨을 스스로 다 내쉬고 당신은 이 지상의 생을 완성하셨습니다. 지금, 당신을 영원한 잠에 들게 한 저 관 속에는 이 땅에 슬픔을 가진 모든 어머니들의 눈물을 대신 닦아낸 손수건이 당신 가슴 위에 놓여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 세상의 눈물을 가지고 가시는 당신, 아름답습니다.



IV

호모 에쎄, 에쎄 호모,

이 사람을 보라,

지나가는 자들이여 잠시 서서 보라,

여기 한 사람이 있었다.

우리가 그를 묻는 것은 망각이 아니라

어떤 약속을 심는 것이다.



V

하의도 동쪽 기슭

일제히 뒤집어지는 풀섶에서

흑염소들이 고개를 돌리고 바라보네

먹구름 밀어내는 은박(銀箔)의 바다를

- 황지우 시인의 추모시, <지나가는 사람이여, 잠시 멈추시라>


광장은 다시 부지런히, 능란하게 봉쇄되었다.
지금은 겨울이다.  

by 파란자전거 | 2009/08/18 16:56 | 살다보니 | 트랙백 | 덧글(1)

홋카이도, 아오이케 北海道, 靑池

여름, 북해도답잖은 더위에 넋나간 잠자리
포토제닉한 동네 북해도에 다녀왔음. 날로 먹는 포스팅.

by 파란자전거 | 2009/08/16 22:24 | 이 사진 | 트랙백 | 덧글(2)

국가대표


<오! 브라더스>, <미녀는 괴로워>를 거쳐 <국가대표>를 완성해낸 김용화 감독은 '고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선수'임엔 분명하다. 주제넘게 그의 능력을 평가하자는 게 아니라, 그의 진화방향이 선수쪽이란 얘기다. 더욱 능란하고 영리해졌다.
자신을 해외로 입양시킨 엄마를 찾으러 돌아온 주인공, 군대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대표의 길을 걷는 청년들의 눈물겨운 도전기. 예상대로 이 영화엔 관객을 울리기 위한 신파가 잔뜩 장전되어 있다. 클라이막스에 가서는 심지어 등장인물들이 단체로 눈물의 애국가를 부르는 장면까지 있다. 쯧쯧... 이거 위험해... 싶은 순간, 영화는 슬쩍 삐딱한 유머를 던져주면서 싸구려 신파 직전단계에서 매끄럽게 빠져나간다. 점프용어로 말하자면 착지가 예쁘다. 울릴 거 다 울려가며 세련미를 잃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 점에서 <해운대>와 비교된다.)

타이틀을 <국가대표>로 뽑은 것은 여러 모로 의미심장하다. 주인공 청년들에게는 개인적 성취보다도 '국가대표'라는 단어가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정체성이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그들이 대한민국을 향해 품고 있는 마음은 웬수 같은 부모를 대하는 애증의 감정을 닮았다. x도 해준 거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무거운 존재. 그 무거움을 온전히 떠메고 날아오름으로서 그들은 비로소 어른이 된다. 그러한 애증의 감정을 중심에 놓은 감독의 직관은 찬사를 받을 만 하다.

우리 나라 스키점프 대표팀은 아직도 다섯명 뿐이다.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꼼수로 급조된 대표팀이다보니 준비과정이나 훈련과정이 가관인 것은 당연한 일(<쿨러닝>을 능가한다). 한데 이 팀이 실제로 각종 세계대회에서 개인전, 단체전 금메달을 긁어댔다니, 신기한 일이다. 국가는 저지르고 국민이 성취한다. 대한민국의 성취가 위대하다면 갈채는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  

하정우는 특유의 뚱한 눈매를 잘 활용하면서 언제나 그렇듯 어슬렁어슬렁 연기한다. 또래 남자배우들처럼 살인눈빛과 어깨가오에 몰두하지 않는 참 귀한 배우다. 김동욱은 가장 빛난다. 아주 사랑스럽다. 김지석도 잘했다. 그닥 도드라지지 않는 무난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도 파묻히지 않는다. (이 배우는 살짝 저평가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이재응은, 어린 나이에 벌써 대체불가능한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는 듯하다. (조 페시같은 훌륭한 조연으로 커주길)

성동일, 이한위, 김용건은 아마도 김용화 감독의 패밀리가 될 것 같은데, 감독과의 궁합이 잘 맞는 편인가보다. 성동일이나 이한위는 살인적인 애드립을 마구 날리는 타입의 연기자들인데, <미녀는 괴로워>나 <국가대표>에서의 연기는 딱 적정 수준의 깔끔함을 보여준다. 김성주 아나운서와 해설자의 연기도 자유분방하면서도 잘 조율되어 있다. 사실 코미디의 수위와 호흡을 촬영중에 적절하게 유지한다는 게 쉽지 않다. 김 감독이 선수라는 얘긴 그래서다.

<그림자 살인> 포스트에서도 말했듯이, 대중 오락영화를 그것답게 만드는 감독은 천재적인 예술감독 못지 않게 소중하다. 그런 면에서 수작 오락영화들이 속속 나타나는 요즘의 한국영화판이 난 참 희망적으로 느껴진다. <해운대>랑 서로 잡아먹지 말고 동반대박났으면 좋겠다.

by 파란자전거 | 2009/08/04 23:25 | 이 영화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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