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왔다 살다보니

일년 만에 얼음집에 돌아왔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글을 읽어 보았다. 다시 봐도 울대 밑에서 뭔가가 조용히 치밀어 온다.
턱없는 기대, 막대한 제작비, 수많은 식솔들, 60회라는 길이, 묵직한 주제, 시대에 대한 예의와 부채감... 온갖 부담 때문에 자다가도 벌떡벌떡 깨어날 무렵이었고, 축복을 받아도 될까 말까 할 시점에 사방에서 쏟아지던 돌팔매와 손가락질로 심신은 엉망진창이었다. 인터넷만 들여다보면 오물을 뒤집어쓴 듯한 모욕감으로 손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처음에 이 드라마를 내게 맡겼던 데스크가 조심스레 물었다. '어떡할래? 접을래? 갈래?' 나는 대답했다. '가야죠.'

그리고 1년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리가 이걸 해낼 수 있을까?' 라는 질문들이 시험하듯 끊임없이 닥쳐오는 나날이었다. 가까스로 그걸 해내고 나면 '이걸 사람들이 좋아해 줄까?' '과연 우리의 진의를 헤아려 주는 날이 올까?'라는 질문들이 따라왔다. 사막에 물을 뿌려대며 걷고 있는 듯 막막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걷고 또 걷다 보니... 믿어지지 않게도 사막은 조금씩 젖었고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우리가 만든 이야기를 좋아해 주었으며, 우리의 진의를 헤아려 주었다. 걸음에 점점 힘이 붙었고, 처음으로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걷고 또 걸어서... 우리는 골인 지점을 통과했다. 출발선에서 느끼던 싸늘함에 비하면 결승선에서의 열렬한 찬사는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지금은 그 모든 일들이 꿈처럼만 느껴진다.
 
우리 동지들이 자랑스럽다. 우리는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서로의 탓으로 돌리며 비난하지 않았고, 결과가 좋을 때 자기의 공로를 내세우기 위해 남을 깎아내리지 않았다. 잠을 못 자고 밥을 못 먹어도 최선을 다해 웃었고, 언제나 좀더 실력을 발휘할 시간적, 공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 때문에 발을 동동 굴렀다. 그들 모두가 최고의 실력을 가진 사람들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진정한 프로페셔널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서로 끌어안았을 때,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뿌듯했다.

여하튼 돌아왔다. 멀리 사냥을 나갔다가 일년만에 얼음집에 돌아온 에스키모가 된 기분이다. 개는 도망갔고, 얼음집 입구에는 거미줄이 쳐져 있다(극지방에 거미가 사는지는 묻지 말자). 대청소를 하고, 불을 피운 뒤, 멍하지 앉아서 생각에 잠겨본다. 자... 인제 또 뭘 하지?

.... 살다보니

악몽과 같은 일주일을 보냈다. 

머리를 싸매고 일년간 준비한 기획이, 공개도 되기 전에 단어 몇 개로 싸잡아 매도되고, 사람들은 소문의 진상을 알아볼 생각도 없이 남이 써놓은 욕을 보고 분기탱천해서 또 욕을 쏟아부었다. 머리가 어지럽고 밤에는 분하고 억울해서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렇지만 얻은 것도 있었다. 누가 진정한 친구인가, 내가 어려울 때 의지할 만한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기꺼이 내가 빠진 진창에 발을 담그고, 어깨에 손을 얹어 주었다. 무성한 말들은 말들일 뿐, 흔들리지 말고 때가 오면 네가 준비한 진심을 보여주어라.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추스르고 일어나야지.


인동초 살다보니


해방 후 지금까지 독재적 군사통치가 판을 칠때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외면했다.

'나는 야당도 아니고, 여당도 아니다. 나는 정치와 관계없다'

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을 봐왔다.
그러면서 그것이 중립적이고 공정한 태도인 양 점잔을 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악을 악이라고 비판하지 않고,
선을 선이라고 격려하지 않겠다는 자들이다.
스스로는 황희 정승의 처세훈을 실천하고 있다고
자기합리화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얼핏보면 공평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공평한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은 비판을 함으로써 입게 될 손실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기회주의적인 태도다.

이것이 결국 악을 조장하고 지금껏 선을 좌절시켜왔다.

지금까지 군사독재 체제 하에서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싸운 사람들이,
이렇듯 비판을 회피하는 기회주의적인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좌절감을 느껴왔는지 모른다.

그들은 또한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악한 자들을
가장 크게 도와준 사람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란 말이 바로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독재정권에 사형선고를받고 죽음을 기다리던 김대중의 잠언집中-


I

자공(子貢)이 물었다. 선생님,

한 생(生)이 다하도록 해야 할 게 있다면

그게 뭘까요. 선생은 머뭇거리지도 않고 바로 말했다.

그거? 용서하는 거야.



II

그분이 가셨다.

2009년 8월18일 오후 1시43분,

나는 성프란시스꼬 회관으로 걸어갔고

정동 오래된 느티나무의 더 굵어진 빗방울이

우산에 후두둑 마침표들을 찍었다.

그때 세브란스 뒤편 백양나무숲도 진저리를 쳤으리라.

한세상 우리와 함께 숨 쉬었던 공기 속에

한분의 마지막 숨결이 닿았을 때

소스라치며 빗물을 털어내는

백양나무의 그 무수한 낱말들;

그분이 가셨고, 그분이 가셨다고

어디선가 문자 메시지들이 연달아 들어오고,

광화문 광장, 꽉 막힌 차량들 사이로

잠시 짜증을 멈추고

사람들은 인왕산으로 몰려가는 먹구름을 보았다.

지하철 계단을 바쁘게 뛰어오르던 자들도,

담배 피우러 복도 난간에 나온 젊은 사원들도,

기차역 대합실의 늦은 휴가객들도, 증권거래소와

통신사 사람들도 뭔가, 순간 텅 비어버린 것 같은

시간의 정지 속에 멈춰 있었다.

그분이 가셨다.



III

당신이 잠시 붙들어놓은 시간 속에, 이젠 모자를 벗고 머리 숙이는 길손들은 없지만, 대한민국 사람들 모두가 잠깐일지언정 당신을 생각했을 거예요. 돌이켜 보니, 우선 우리가, 당신과 참 오랫동안 함께 살았다는 생각이 먼저 들고요, 여든다섯 성상의 굴곡 많은 당신의 생을 가로지르는 동안 우리가 당신의 동시대였다는 게 자랑스러워요. “나는 그때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영광의 대가로 끌려가서 고생한 사람들도 많았지만요. 저는 당신을 한마디로 말할 수 있어요. 당신은 ‘목소리’, 그래요, 목소리였던 같아요. 당신은, 우리 젊은 날, 그 모질고 깜깜했던 얼어붙은 시대를 건너오는 목소리였어요. 당신 가슴속 다이몬에서 나온 그 목소리, 하마터면 비굴해질 뻔했던 우리를 다시 세우고, 우리가 헤맬 때 꼭 어떤 곳을 가리켰던 그 목소리에는 때로는 전율과 눈물이 때로는 얼마간의 피가 섞여 있었지요. 언제였던가요. 대구 유세 때였을까요. 그 목소리는 날아오는 돌멩이를 피하지 않고 주문 걸린 시대의 맹목을 향해 준열히 꾸짖음으로써 돌멩이들을 허공에 정지시켰드랬습니다. 그 피맺힌 목소리를 우리는 잊지 못합니다. 또 당신이 통곡을 터뜨리는 몇몇 장면들도 우리는 잊지 못합니다. 순안 공항에 내렸을 때 트랩 위에 잠시 서서 동원된 환호성 대신 멀리 북녘 산하를 망연히 바라보시던 당신 모습을 정말 잊을 수 없어요. 테러, 납치, 가택연금, 목숨을 요구하는 군사법정 그리고 투옥으로 점선을 이루는 당신의 생의, 정말 파란만장이라는 말로도 모자란, 그 유명한 드라마 가운데 아마 그때가 최정점이었겠지요. 참, 당신처럼, 한세상 나와서 인생을 이렇듯 엄청난 용량으로 살아낸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요? 당신이 대단하다는 건 바로 그거라고 생각해요. 세상의 온갖 욕됨까지 다 받아들이고 그 숱한 사람들의 소망을 다 담아 ‘한껏’ 사셨다는 것. 최선을 다하여 살아냈다는 것. 생을 한 점 그을음 없이 다 태워냈다는 것. 그 가운데 우리가 가장 경이롭게 생각하는 건 이거예요. 우리가 아무리 따라 하려해도 잘 안 되는 걸 당신은 하셨는데요, 그건 용서였어요. 우리도 삶의 나이테가 굵어지면서 그 안에 꼭 한두 사람, 용서할 수 없는 자 혹은 용서하기 힘든 자들이 나타나 새벽의 어둠 저편을 노려보게 되거든요. 그러나 당신은 당신을 죽음으로까지 몰아넣었던 사람들의 두려움을 기꺼이 풀어주고, 끊임없이 당신을 모략의 언어로 주문을 거는 자들까지 마침내 당신의 주검 앞으로 불러냈습니다. 아, 그래요. 용서하였으므로 당신의 생은 위대합니다. “그렇게 해서”, 2009년 8월18일 오후 1시43분, 이 세상에서 뛰었던 당신의 맥박과 혈압을 스스로 내려놓으시고 이 땅에 함께 쉬었던 숨을 스스로 다 내쉬고 당신은 이 지상의 생을 완성하셨습니다. 지금, 당신을 영원한 잠에 들게 한 저 관 속에는 이 땅에 슬픔을 가진 모든 어머니들의 눈물을 대신 닦아낸 손수건이 당신 가슴 위에 놓여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 세상의 눈물을 가지고 가시는 당신, 아름답습니다.



IV

호모 에쎄, 에쎄 호모,

이 사람을 보라,

지나가는 자들이여 잠시 서서 보라,

여기 한 사람이 있었다.

우리가 그를 묻는 것은 망각이 아니라

어떤 약속을 심는 것이다.



V

하의도 동쪽 기슭

일제히 뒤집어지는 풀섶에서

흑염소들이 고개를 돌리고 바라보네

먹구름 밀어내는 은박(銀箔)의 바다를

- 황지우 시인의 추모시, <지나가는 사람이여, 잠시 멈추시라>


광장은 다시 부지런히, 능란하게 봉쇄되었다.
지금은 겨울이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